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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험도정보 활용규제가 도입되지 않는 이유

[칼럼] 위험도정보 활용규제가 도입되지 않는 이유

기사승인 2024. 10.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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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1990년대 후반, 과학기술처는 '위험도정보 활용규제(Risk Informed Regulation)'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지난 30년 동안 간간이 도입여부가 논의됐으나 지금까지도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 위험도정보 활용규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원자력 발전의 위험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해 이를 규제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원전의 위험도는 확률론적 위험도평가(Probabilistic Risk Assessment)를 통해서 평가할 수 있다.

성능기반규제(Performance Based Regulation)도 유사하다. 기존의 규정적 규제가 어떤 부품의 정기검사 주기를 지켰는지를 보는 것이라면 성능기반규제는 그 부품의 성능이 유지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규정적 규제' 보다 '성능기반규제'가 안전목적상 더 합리적이다. 미국·프랑스·일본 등의 규제기관은 형편에 따라 적극적으로 또는 제한적으로 이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도입은 대세가 되고 있다. 위험도를 평가해 보고 더 위험한 곳에 규제자원을 집중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부분적으로 도입될 뿐, 전면적 도입은 난망하다.

첫째, 규제기관의 기술적 준비상태가 부족하다. 확률론적 위험도 평가 전문가가 부족하다. 그동안 정부가 수차례 위험도 정보 성능기반규제의 원년을 선포했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알고 선포한 것이 아니었다. 고위직이 그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 선언부터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이 제도의 이행을 위해 어떤 준비와 투자가 필요한지 몰랐고, 그러니 이행이 될 턱이 없었다.

둘째, 현장규제자의 완고함 때문이다. 현장규제자의 입장에서 정기검사 기간을 준수했는지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런데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또한 현장규제가 모두가 확률론적 위험도평가의 전문가이기를 기대할 수 없으며, 이 기술에 전문가가 아니라면 확률론적 위험도평가에 부정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원안위가 이 제도의 도입취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사업자는 확률론적 위험도평가의 결과를 활용해 더 중요한 곳에 집중하고 덜 중요한 곳은 완화하는 식으로 규제를 합리화 하게 된다. 이때 사업자는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주로 사용하게 될 것이고, 이는 규제자의 입장에서 마뜩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나라 규제기관이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규제를 부과하는 것에는 부담이 없지만, 기존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뭔가 찜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NRC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사업자 스스로 원전에 대한 위험도 평가를 수행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원전의 안전성이 향상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사업자가 규제를 완화하는데 이 기법을 활용하겠지만 크게 보면 사업자 스스로가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규제를 끌고 갈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원자력 안전성 전체를 놓고 전략적인 비전을 수립하는 것은 하루하루 규제행위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행정공무원들이 이런 전략적 마인드를 가질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기술지원조직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이런 마인드를 원안위에 주입할 능력이 없다면 이건 도입이 난망하다. 그 결과 30년 전 원전이용률이 80%에 머물던 미국은 지금 90%로 상승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90%에서 80%로 낮아졌다. 미국 원전의 평균 운전 기간은 40년이고 국내 원전의 평균 운전 기간은 20년임에도 미국 원전이 더 좋은 성능을 보이는 것도 위험도정보 활용규제의 효과라고 본다. 원전 이용률이 10% 향상되면 원전이 10% 늘어난 것과 같은 효과다. 원전 2.6기를 더 지은 것과 같은 것이다. 원자력안전규제 당국은 큰 틀에서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늘 고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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