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저자·삽화가, 출판사와 관계 망칠까 두려워 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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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신문 NRC는 지난 8일(현지시간) 네덜란드의 4대 교육 출판사들이 원리주의 개신교 단체들과 협의해 ‘민감한 주제’ 목록을 작성하고, 초등교과서 저자·삽화가들에게 목록에 반하는 주제를 피할 것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NRC에 따르면 이들 출판사들은 신에 대한 긍정적 묘사에서 나아가 점성술·진화론 등 ‘(종교와) 논쟁의 소지가 있는 이론’에 대한 언급을 없애고자 했다. 검열 목록은 해리포터·용·점성술과 같은 초자연적 주제에서 화장·미니스커트·다문화가정과 같은 일상 분야, 여성 성직자와 진화론까지 광범위했다.
한 교육 출판사는 검열 지침서를 통해 △진화론 △별자리 △마술 △포켓몬스터 △여성 목사 △용 △유령 △드라마·영화 등의 내용을 피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NRC 취재에 응한 저자들은 대형 교과서 출판사들과 관계를 망칠까 두려워 검열에 따라야만 했다고 밝혔다. 실제 검열에 비판을 제기한 뒤 교과서 집필에서 제외된 저자들도 있다.
교과서 저자 안네마리는 “(검열은) 교육 출판사의 권한이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저자는 “진화론과 같은 주제의 기피는 역사와 생물학에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는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덜란드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교과서 출판사를 향한 개신교 측의 로비와 압박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개신교 학교협회는 지난해 네덜란드 내 약 200개의 개신교 초등학교를 대표하는 교육재단을 설립한 후 원리주의 개신교 학교 가치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개신교 계열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개신교 학부모회 정책 담당자 라스허는 검열을 ‘소독’이라고 표현하며 “우리는 개신교인으로서 아이들이 사회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네덜란드 공교육 협회는 교육 출판업계가 검열 관행에 관련해 투명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트레흐트대학 교육학부 레즈만 교수는 “교육은 지식, 기술, 가치의 공유에 이바지해야 하며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라며 “학생들에게 특정 정보를 누락·제공하는 행위는 출판사와 학교의 공동 책임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