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公心) 배우는 장엄등...일종의 만다라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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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등불과 관련된 연등회가 열립니다. 오는 11일 서울 종로 일대는 각 사찰들의 장엄등(대형 등) 행렬로 빛의 수(繡)가 놓일 예정이죠. 다양한 장엄등 행렬 가운데 매년 신문 지면에 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화려한 청년 연희단과 장엄등으로 유명한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입니다.
안양 한마음선원에서 5일 열린 2024년 점등식에 참석한 조계종 총무국장 향림스님(염불사 주지)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수년째 보고 있지만 AI만 진화하는 게 아니라 한마음선원의 장엄등과 연희도 진화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죠.
한마음선원은 청년들이 주축이 돼서 거의 6개월 가까운 시간을 들여 장엄등을 만듭니다. 등을 재활용하는 일부 사찰과 달리 매년 한마음선원 창건주 대행스님(1927∼2012)의 법문에 맞춰 새 등을 제작합니다. 또한 청년 연희단·용팀은 장엄등 불사 기간에 맞춰 전문 무용수를 데려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철저히 연습합니다.
연등행렬 관람객들은 당일 보이는 화려한 모습만 보고 그 뒤에 있는 땀은 잘 모릅니다. 연등행렬을 위해 반년 가까운 시간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청년은 얼핏 생각할 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불안한 미래 앞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연등회가 임박하면 한마음선원 청년 법우(法友·사찰 학생·청년회 회원을 부르는 명칭)는 매일 늦은 시간까지 장엄등 제작과 연희 연습에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특히 매번 마지막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청년회 회장단의 경우 '나를 내려놓는 마음' 없이는 버티기 힘듭니다. 해병대 출신 법우는 "돈 받고 하는 일이었다면 진작에 그만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몇 차례 장엄등 불사를 마친 이 청년은 지금은 출가해서 승려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불사 과정에서 '나를 뛰어넘는 일'을 경험한 것이 출가까지의 문턱을 낮췄다는 후문입니다.
장엄등 불사 과정에서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발생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한 여자 법우는 늦은 시간까지 연희 연습을 하고 낮에는 교사 일에 전념하느라 틈만 나면 쪽잠을 자다 보니 주변의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매년 청년회 활동에 전념하는 여자 법우들은 흔히 자기보다 '취미 활동(불사)'에 시간을 더 쓰는 여자친구를 이해 못 하는 남자친구로 마음고생합니다. 남자 법우들은 장엄등 제작을 위해 무거운 것을 나르고 공구를 다루면서 종종 다치기도 합니다. 손가락에 스태그플러나 전구 파편이 박혀도 다른 이들이 신경 쓸까 봐 고통을 참고 남몰래 병원을 가는 사례도 있습니다. 화려한 등은 이들의 헌신으로 밝게 빛나고 있는 셈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장엄등은 연등행렬이 끝나면 대부분 해체합니다. 한마음선원에서 장엄등은 마치 티베트불교 만다라와 같습니다. 티베트 승려들이 고운 모래로 만드는 '만다라'는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는 정성스러운 공양물(供養物)입니다. 한마음선원 장엄등은 보는 모든 이의 마음의 불을 밝힌다는 취지로 올리는 공양물과 같습니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장엄하게 만들다가 시기가 지나면 과감하게 회향하고 공덕을 돌려야 합니다. 수행하는 마음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죠.
한마음선원 청년들이 장엄등 불사 중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불사에 대해 어떤 마음을 내고 있는지 반성하며 그것을 주제로 대화하는 그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종교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공심(公心)은 막상 종교 현장에서 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젊은이들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요. 진심 어린 헌신 앞에서는 지위의 높낮이, 나이의 많고 적고가 없습니다. 너와 내가 없이 함께 느끼는 '한마음'만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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