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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계엄 선언 직후 계엄군은 국회보다 먼저 선관위에 도착해 사전투표 명부를 관리하는 통합명부시스템 서버 사진 등을 확보한 뒤 돌아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를 '윤 대통령의 지시로 부정선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증거 확보 차원'이라고 밝혔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 총체적인 투표 조작이 있었는지 여부는 쉽사리 예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부정선거 의혹 제기자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를 그저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적극 반박하려 하지 않았던 선관위의 무성의함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대선 이후 불거진 '소쿠리 투표' 감사였다. 감사원은 2022년 9월 선관위 정기감사에 착수하면서 대선 선거관리 업무에 대한 직무 감찰도 대상에 포함하며 '소쿠리 투표'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당시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 코로나로 확진·격리된 유권자들이 기표한 사전 투표용지를 소쿠리, 라면박스 등에 모아 옮긴 다음 투표함에 넣는 일들이 벌어져 무효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선관위는 그러나 "'헌법상 독립기구'로서 감사원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며 감사를 거부했다. 결국 의혹은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못했고, 소송 역시 지난 5월 대법원 3부에서 최종 기각됐다. 대법원 3부는 대선 당시 선관위원장이었던 노정희 전 대법관이 속해있었다(다만 노 전 대법관은 해당 판결에 관여하진 않았다).
선관위는 지난해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똑같은 이유로 감사를 거부했다가 계속되는 논란에 결국 허용했다.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난 10년간 있었던 291건의 모든 채용에서 비리와 규정 위반이 발견됐고, 검찰에 수사 의뢰된 전·현직 직원만 29명에 달했다. 한 감사위원은 "이렇게 부패한 기관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선관위는 규정상 선관위원장을 호선(互選)해야 함에도 관례를 이유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각 시도 선관위원장 역시 해당 지역의 법원장들이 맡는다. 이렇다 보니 누군가 선거 과정에서의 각종 의혹을 제기해도 감사원 감사는 시도조차 못 하고, 재판 역시 선관위원장이 법원장인 곳에서 진행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선관위는 여전히 자신들은 감사원이 감사할 수 없는 기관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오는 10일 변론이 예정됐다. 헌재의 심판 결과가 어떻든 '무소불위(無所不爲)'라는 수식이 붙는 선관위가 스스로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외부 의혹 제기에도 적극 대응하는 '유소불위(有所不爲)'의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