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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게 환호하는 여성팬을 지칭하는 '빠순이'가 '오빠 순이'에서 비롯돼 사실 그닥 좋은 뜻은 아니라는 설명에 그는 "알아요. 하지만 시국이 빠순이까지 나오게 하잖아요. 현장에서는 빠순이라는게 자랑스러웠어요"라고 답했다.
2020년 태국 방콕의 반정부시위 현장 곳곳에서는 소녀시대와 블랙핑크 등 케이팝(K-POP)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 몇 소절을 외워 부르기도 했다.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케이팝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행진 하거나 춤을 췄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란 노래 가사처럼 희망을 노래한 이들을 보며 태국의 유력 매체인 방콕포스트는 "케이팝 팬들이 존경하고 기대하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이다. 재벌의 권력과 부패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긴 하지만 한국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짚었다.
홍콩과 태국, 그리고 군부 쿠데타로 민선정부가 전복된 미얀마까지 21세기에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투쟁에는 늘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모범'인 한국이 이들 가슴 한 켠에 희망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군부 독재에 맞서 투쟁하는 미얀마에선 "민주화 투쟁에 실패하면 북한, 성공하면 한국이 될 것"이라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태국의 이 시위 풍경은 지난주 서울에서도 재현됐다. 지난 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선 케이팝이 흘러나왔고 각양각색의 아이돌 응원봉이 불을 밝혔다. 영국 BBC와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도 케이팝과 아이돌 응원봉이 등장한 한국의 시위 문화에 주목했다.
이날 집회에 팬클럽 친구들과 함께 참석한 시민 A씨(24)도 기자에게 "한국에서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비상 계엄령에 깜짝 놀랐다"면서도 "방구석에서 좋아하는 가수 동영상 보는 것이 삶의 낙인 나같은 빠순이들도 이 추위에 다 나온 것을 보고 아직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태국 '빠순이' P씨는 2020년 이후 몇 차례 좌절을 겪었다. 시위는 흐지부지됐고, 이후 군주제 개혁을 주장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전진당의 시도는 번번히 가로막혀 끝내 헌재에 의해 해산되고 주요 당간부들의 정치활동도 10년간 금지됐다.
하지만 그날 거리에 있던 이들은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며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의 소식에 "민주주의 롤모델 국가인 한국이 우리처럼 부끄러운 상황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보내온 태국 친구들의 메시지를 보며 우리가 피땀으로 어렵게 일궈낸 자유와 민주주의는 동시에 간절하고 절실한 누군가의 희망임을 곱씹는다.